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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펌글)‘조국’에 대해 비판적인 당신에게 권한다.

보아요 2021. 6. 16. 13:25

 

 

‘조국’에 대해 비판적인 당신에게 권한다.

- #조국의시간 이 남긴 질문

듣기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귀가 싫어진다는데 2019년부터 100만 건 이상의 보도를 통해 “기승전조국”을 들어야 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조국’은 더 이상 듣기 싫은 노래일지 모른다. 나는 이미 ‘조국’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라고 쓴 바 있지만, <<조국의 시간>> 돌풍은 우리에게 일반명사 ‘조국’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요구한다.

1. 책 논란의 실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조국’(이하 모든 실명의 존칭 생략)에 대한 인식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1) “조국 구속, 조국 사형”이라는 극언을 담은 플랭카드를 버젓이 내걸 정도로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그룹. 여기에는 “자진을 바란다.”고 했다는 윤석열과 그 지지자, 국민의 힘 및 그 지지그룹이 포함된다. 2) 조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하는 진보진영 일부. 문정부를 ‘민주독재’라 칭하는 그룹을 포함 나름 비판정신을 가진 지식인, “조로남불”을 외치는 청년 세대, 상당수의 언론이 해당된다. 3) 지지자 및 측은지심을 가진 평범한 시민, 책에서 언급한 ‘촛불시민’도 포함된다.

출간 전부터 1)의 공격과 비아냥은 언론에 광범위하게 노출됐다. 3)의 입장이야 정도 차이일 뿐 어떤 마음일지 짐작할 수 있다. 내게 관심은 2)그룹이었다. 구성의 다양성 만큼이나 입장도 다채로울 줄 알았다. 소위 ‘조국 사태’로 문재인 정부 공격에 나선 일부 진보 진영, 지난 재보선 이후 ‘기승전조국’ 대열에 동참한 여당을 비롯 저술활동으로 이름을 얻은 지식인이 책을 매개로 어떤 메시지를 내놓는지 살펴봤다.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인가? ---

나는 책을 받으면 비판적으로 읽을 작정이었다. 출간 전부터 언론을 통해 제기된 비판처럼 회고록이라는 형식을 통해 “변명”으로 일관할 줄 알았다. 진보진영까지 돌아선 이유를 알만한 자의적 해석이나 허술한 논리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외려 교과서를 읽는 기분으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많은 라벨을 붙여 나갔다.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적기 전 우선 그동안 지나쳤던 여러 명망가들의 비판을 돌아보았다. 반론이나 공감의 지점이 언급하고 싶어서. 당연히 책을 읽고 비판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에 대해 조롱했다. 저술활동으로 이름을 얻은 진중권과 고종석이 대표적이다. 이미 반문재인 대열에 합류하여 막말을 서슴지 않은 그들이지만 최소한 책은 읽고 비판했겠지 싶었던 것은 물정 모르는 나의 순진한 기대였다. “가지가지 한다”, “재앙”, “복붙” 운운하며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부은 건 출간 전의 일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러 진보 지식인들이 문재인 정부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책에 대해 비난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 모두 출간 전 언론에 스피커 노릇을 했다는 점이다.

출간 2주 만에 20만부 넘게 책이 팔리며 출판계의 신화를 쓰자 이제는 "촛불집회 참가자의 1/5 수준이니 ‘대깨문’, ‘조빠’ 들의 숫자가 그만큼일뿐이다, 책 사재기를 한다, 인세가 2억이 넘었는데 기부 안 하냐" 등 논점을 뒤섞고 변죽만 울리는 새로운 쟁점만 제시됐을 뿐, 책에 대한 진지한 얘기는 없다.

급기야 책을 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하고, 중앙일보는 여러 논란을 일으킨 논설위원의 이름을 빌어 출판사까지 공격한다. 전두환, 이명박 회고록 출간 때도 없던 현상이다. 책에서 기소 전 SBS 예고 보도를 지적하며 노무현의 “논두렁 시계”와 같은 맥락이라고 하니 심지어 "노무현 동일시"라고 확대해석하며 다시 조국 공격의 빌미로 활용한다.

2016년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 회고록이 파문을 일으킨 일이 있다. 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결정이 “노무현정부가 북한에 의견을 물은 뒤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반박에 나서자 송민순은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며 맞섰다. <<조국의 시간>>처럼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반문하며 논란을 지핀 것이다. 그러나 퇴임한 전직 장관이 유력 대선주자인 야당대표와 동일시한 것이라는 논란은 없었다. <<조국의 시간>>을 제대로 읽었다면 나올 수 없는 얘기다.

2. 솔직하게 질문하고 답을 모을 시간

Q 1. 재판이 진행 중인데 “왜 책을 냈냐?”

‘조국’을 계기로 진보는 분열됐고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가까웠던 여러 사람과 ‘조국’ 때문에 멀어졌거나 결별했다. 나는 조국 지지자가 아니다. 박원순 때도 그랬지만, 좀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일 뿐이다. 공부하고 일하면서 섣불리 예단하지 않으려 하고 실체 진실에 입각해서 질문하고 반론하려는 태도를 갖고, 인간은 편향의 동물이기에 더 선입견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고 배우고 익혔다. 이렇게 지극히 상식적인 자세마저 ‘조국 사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책에서 “후회한다.”는 언급이 몇 차례 등장하지만,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대목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권과 조국 본인의 입각 결정에 따른 평가는 역사의 몫으로 남겨두고 사법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런 입장만으로 나는 “조빠”로 지탄받았다. 심지어 조국을 잘 알고 가까운 입장에 있던 사람들조차 “조국이 잘 생겨서 좋아한다.”는 식으로 희화화했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 괜히 남의 일에 신경 쓰다 총 맞지 말고 페북에 포스팅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면서 피곤해졌다. “멸문지화”를 당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측은지심마저 “문파”, “대깨문”으로 폄하해버리는 세력 앞에 일색으로 취급받기 싫어 입을 다물게 됐다. 조국 페이스북에 댓글 한 번 남겼다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여러 공격을 받으면서 두려워졌다.

나처럼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조차 위축되게 만드는 낙인찍기, 유신과 3S 정책을 경험한 이 나라의 역사 속에 너무도 선명한 기시감 아닌가?

2013년 전 구미시장에 의해 공개석상에서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추앙받는 박정희에 대해서도 유신독재를 주장하는 측에서조차 “공과(功過)가 있다”면서 공(功)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균형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데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여당인 민주당 대표 송영길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그런데 정작 2019년부터 100만 건이 넘는 언론보도 속에 조국 일가는 물론 지인들까지 100건이 넘는 압수수색을 실시한 결과의 초라함에 대해 반성은커녕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으로 지적하는 보도조차 없다. 책에서 인용한 한겨레 기자의 글 역시 대부분 신문이 아닌 인권 소식지에 실렸다.

언론은 집 앞에서 뻗치기하고 압수수색 중에 희희낙락거리며 메뉴만을 확인할 뿐 조국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전하거나 쟁점을 진단하지 않는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검찰의 자기모순이나 최성해 등 증인의 조국 일가에 유리한 진술은 인용되지 않는다. 게이트가 될 것이라던 사모펀드 무죄는 사실관계가 바로잡히지 않은 채 나무위키에 적혀 있듯 여전한 의혹으로, 돈 많은 강남좌파 고위공직자가 강남에 빌딩까지 사려고 한 욕망의 화신 키워드로 인식되어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유보적 관점조차 “문파, 조빠”로 낙인 찍히는 현실에서 조국은 책 이외에 어떤 방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가?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책 속에 담긴 것처럼 비단 친구나 지지자들만의 생각일까? 대놓고 “자진을 바란다”는 공포와 일련의 소송 과정 속에서도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책을 써 낸 정신승리에 측은지심이라도 갖는 것은 그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는 별개로 인간다운 세상을 원하는 진보주의자의 마땅한 태도 아닌가?

--- 진술거부가 비난 받을 일인가? ---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Carol Tavris)는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여지지만, 그 희생자가 회고록을 쓴다.”고* 했다. <<조국의 시간>>이 딱 그렇지 않은가?

언론과 야권에서는 법무부장관을 지낸 자가 검찰 조사 때는 진술을 거부해 놓고 책을 통해 변명한다고 질타했다. 진증권이 "조국은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큰데, 그럴 경우 성질이라도 나빠야 신은 공평한 거지만, 너무 착하다"고 한 것처럼 조국은 이 와중에도 너무도 착하게 페이스북에 책 페이지까지 언급하며 착실하게 답을 했지만, 나는 관점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우리가 얼마나 검찰공화국에 길들여졌는지를 방증하는 하나의 사례다.

책에 표로 언급되어 있지만 OECD 국가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 검찰의 전횡에 피의자로서 대응할 수 있는 권리가 진술거부권이다. 인권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해야 할 사안이다. 그동안 검찰의 조사가 얼마나 자의적인지, 전직 대통령도 재벌회장도 검찰조사 과정에서 자진할 만큼 얼마나 강압적인지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다. 노무현을 잡아들일 때 검찰의 득의만면(得意滿面)하던 웃음을 잊을 수 있는가? 책을 읽어보면 진술거부권을 행사해도 얼마나 시달리는 구조인지 알 수 있는데, 검찰의 시각에서 이를 비난의 도구로 삼는 일은 무식하거나 무도(無道)한 거다.

조국은 본인과 가족 일가가 수많은 재판에 연루되어 있는 이 민감한 시기에 책을 냈다. 검사 출신 조응천의 말처럼 “괘씸죄”에 걸릴 수도 있음(이런 반헌법적 발상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보도된다는 사실 자체가 검찰공화국을 넘어 사법정의를 묻게 한다)에도, 뻔히 여러 논란이 예상된 상황에서도 책을 내고 “법학자로서 전직 법무부장관으로서 기소된 혐의에 대해 최종 판결이 나면 나는 승복할 것”(88쪽)이라고 공언했다. 서울 법대 최연소 입학, 최연소 교수가 된 명민한 사람이 기록을 남기는 행위가 자신과 일가의 재판 과정에서 자칫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헤아리지 못해서 책을 냈겠는가? 이보다 더한 족쇄가 어디 있나?

Q 2. 하필 대선을 앞두고 책을 내서 판을 흐리나?

나는 책이 당도하면 비판적으로 읽어보겠다고 공언했지만 막상 책을 받고 숨이 막혀 제대로 읽기 힘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음료수도 거부한 선의의 촛불시민처럼 그를 지지하지도, 촛불현장을 꼬박 지킬 만큼 정의감이 투철하지도 않지만, 책의 홍보문구와는 달리 격정과 토로의 감정적 톤 앤 매너는 탈수기와 건조기까지 돌려 다 뺀 차분한 문장으로 또박또박 쓴 책 내용이 오히려 너무 아파서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일이 고통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숱한 오해와 공격에도 아무런 보상 없이 선의로 자신의 시간을 쓰고 고통을 나눈 촛불시민들에게 미안했다. 그토록 편향을 갖지 않으려고 내 나름대로 노력함에도 불과 얼마 전의 일조차 까맣게 잊고 내 임의로 해석하고 말았던 나의 오만함이 창피했다. 귀찮아서 얼핏 보도 흐름만 보면서 조국의 안이함이 초래한 논란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던 내 게으름이 부끄러웠다. 논리적이고 차분한 논조로 정교한 세공품을 그리듯 구체적 근거를 적시하는 저자의 일관된 자세에 압도당했다. 측은지심에 흔들리지 않고 책의 허점을 집겠다는 애초의 각오는 사리지고 오타 한 자 없이 한 줄 한 줄 써내려 갔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 팔순 아버지가 꼽은 3가지 책의 의미 ---

반면 각자의 책으로 읽은 아빠는 밤을 새워 이틀 만에 다 읽으셨다. 1939년생으로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는 소위 ‘조국 사태’초기 표창장 논란에 “저거 별 거 아니다”라고 하셨다.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어느 기관에서도 기관장이 직접 직인 찍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의 말조차 섣불리 믿을 수 없었는데. 아버지는 직관적 확신 때문이었는지 책이 당신의 추론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하시면서 3가지 의미를 짚으셨다.

1) 역사의 장강(검찰개혁)은 이미 흐르고 있다. 장강 앞의 잔물결(조국 의혹)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 책이 안 나왔어도 어차피 ‘조국 이슈’는 대선까지 갈 문제다. 이럴 땐 정공법이 필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내용을 촘촘하게 담아 담대한 필치로 잘 썼다.

2) 책에 담긴 내용은 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검란의 문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던 시간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이 시간을 시민의 시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검찰개혁과 민생이 별개가 아니다.

3) 깨어있는 시민들은 다 안다. 조국의 이상 꿈, 행보에 대해. 역사발전은 결코 평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로 이루어진 역사발전의 원동력에 본인과 가족의 피를 찍어 쓴 거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깝지만 크게 보면 역사의 매 국면에서 이런 희생이 있었다. 지금의 이 모든 오해와 억측, 분열과 소란이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책의 1/8을 읽은 시점에서 아빠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으면서 과도한 의미부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색이 대형 국책과제의 이슈관리 전략을 짜 온 전문가 입장에서 아빠 말씀의 1)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기소된 이상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낙인’은 사라지지 않고 ‘족쇄’는 풀리지 않는다.” 고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도 어차피 사라지지 않을 낙인과 족쇄다.

나는 아빠의 나머지 말씀에 동의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보겠다는 마음으로 남은 분량을 읽었다.

Q 3. 조국은 위선자인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남은 질문이다. “조국은 위선자라 문재인 정부의 공정의 가치와 개혁을 망쳤다”는 비판은 내가 접한 민주당 일각, 진보진영 학자들, 진보적 관점을 가진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입장이었다. 위선이라 질타 받던 사모펀드와 표창장 위조가 재판 과정에서 무죄 혹은 검찰의 증거조작 등을 통해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논점이 달라졌다. “어찌되었건 법무부장관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로.

이쯤에서 생각해보자. 민정수석을 지나 법무부장관에 취임할 때도 이미 논란의 중심에 있던 상황에서 문재인과 조국은 생각이 없어서 지명하고 수락했겠나? 책에 자세한 경위가 설명되어 있지만 마땅히 그런 고뇌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정도는 추론할 수 있지 않나?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대해 비판하더라도 최소한 민주정부를 지지하고 역사의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어차피 여론의 법정에서 사법 절차로 공이 넘어간 마당에 좀 지켜보자는 유보적 입장을 취하며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인가?

Q 4. 누가 조국만큼 사과했나?

그동안에도 본인이 누차 공식 사과했고, 책에도 본인의 “한계”, “흠”, “흠결”, “미흡”, “불찰”, “부족함” 등을 고백하고 사과하면서도 “전후좌우에서 날아오는 돌맹이가 없어질 때까지 모두 맞겠다,” “회초리도 다 맞겠다. 부러질 때까지.”라고 썼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조차 ‘조국’은 금기어다.

노무현대통령 재임시절에 국회에서 ‘환생경제’ 연극을 통해 대통령을 조롱했던 나경원 전 의원이 ‘노무현 정신’을 운운하는 시절이다. 노무현의 ‘아방궁’과 ‘논두렁시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단계에서 조국의 위선자 프레임에 갇혀 언급 자체를 기피할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 말씀처럼 “장강의 잔물결”로까지 인식하지 않더라도 조국의 “범죄혐의”와 검찰개혁은 분리하여 인식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도 유용(detachment strategy)하지 않은가? “나와 내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공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73쪽)는 입장은 인정해야 하지 않나?

Q 5. 누가 살아있는 권력인가?

<<조국의 시간>>은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검찰공화국의 문제점을 한데 집약해 놓은 교과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죄 짓지 않는 한 검찰은 나와 무관한 집단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문제인 정부 이후 우리는 그동안 음지에서 활동하던 검찰공화국의 노골적 행태를 목도했다.

이 나라의 살아있는 권력은 5년 뒤 물러날 정부나 집권여당이 아니라 대통령도 탄핵시키고 공약으로 내건 정책마저 “살권수”라는 명분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검찰이다. 정부조직법제조차 무시하며 “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공언하는 집단이다. 현직에 있으면서 대통령과 맞서는 검찰총장을 박해 받는 검사의 상징으로 포장해주는 언론은 수궁가의 ‘범이 내려온다’까지 인용(저자는 책에서 잘못 인용한 점을 통쾌하게 짚는다)하며 박근혜를 칭송하던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넘어 선 윤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누가 살아있는 권력인가?

책은 사회의 본질을 고민하게 했던 80년대 사구체 논쟁처럼 기득권의 작동원리, 검-언-정-언-검 카르텔이 작동하는 본질을 낱낱이 일러준다. 이연주 변호사 말처럼 “우리가 정신 놓고 어버버 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가늠하게 한다.

책을 읽고 알게 됐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 누구라도 언제든지 내가 죄를 짓지 않아도 기소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막상 기소되면 내가 지금 쓴 이 글조차 내 유죄의 근거가 되어 공소장이 아무리 허무맹랑해도, 애매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소법의 대원칙이나 죄형법정주의, 공판중심주의 같은 원칙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인 조항일 뿐이겠구나 싶어 두려웠다.

이렇게 잠재된 공포감의 위력은 알아서 입을 다물게 만들고 자발적으로 고개 숙이게 한다. 자유를 빼앗고 의지를 위축시키며 기득권에 고개 숙이게 만드는 모멸감에도 나와 가족의 이해관계 앞에 배신조차 기꺼이 하게 만드는 역사가 남의 일이기만 할까? 책에서 대통령도 선택할 수 있다는 조선일보의 오만함을 탑재한 검찰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시 질문한다. 누가 살아있는 권력인가?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이 주권자를 의식하고 최소한의 눈치라도 봤다면 주권자의 위임을 받은 임명권자에게 현직에서 대놓고 맞서고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즐기며 퇴임 전 대구 방문을 통해 실질적 정치행보를 시작하진 못한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라면 검찰중립과 독립을 외치던 현직 검찰총장이 옷을 벗고 대선 판에 뛰어드는 자기모순에 대해 언론이 문제제기는 커녕 앞장서 대선행보를 기정사실화하며 동정 보도 할 수는 없다.

검찰이 중립적 기관이라면 현직 검찰총장이 옷을 벗고 대선 행보에 나서는 행위 자체를 누구보다 검찰 내부에서 문제 삼아야 한다. “김학의, 99만원 불기소”같은 선택적 정의를 노골적으로 행사하는 일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검찰공화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고인 물이 썩듯 통제 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수사 기소 분리라는 대통령 공약사항에 반기를 드는 과정 자체가 검찰 스스로 살아있는 권력임을 방증하는 셈이다. 1954년 검사출신 엄상섭 의원이 지적한 “검찰파쇼”가 왜 리버럴 정권에서는 재현 되는가? 대체 누가 살아있는 권력인가?

Q 6. 조국이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조국 개인에 대한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무수석이나 법무부장관이 아니더라도 조국은 이미 오랜 기간 자칭 ‘폴리페서’로, 사실 그의 오랜 소신이었던 ‘앙가주망’을 실천해오면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깊듯 그에 따른 구설수나 호오(好惡)는 본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그 또한 잘 알고 있고 책에도 구석구석 공직자 이전에 혜택 받은 지식인으로서의 책무에 대한 소신이 배어 있다.

개인적으로 그의 울산대 재직 시절, 어느 저널에 실린 그의 글을 보고 휴대폰도 없던 그에게 유선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어렵사리 방송출연을 섭외한 적 있다. 출연 안하겠다는 그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을 배웠다. 어렵사리 방송에 모신 이후 간헐적으로 뉴스 등을 통해 여러 사회적 활동을 하는 모습을 봤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그를 '안다' 생각했지만, 지금껏 한 번도 그의 강의나 책도 읽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는 대상으로 그에 대한 여러 얘기를 들으면서 편견만 더했음을. 그를 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많은 이들이 어쩌면 나 같을지 모른다.

그는 책에서 “강남성”이라 표현했지만, 얼마든지 조금 더 편하게 살고 자식들 호강시킬 수 있었다. 같은 민정수석을 지낸 우병우의 아들은 수퍼카를 몰며 코너링이 좋아 꽃보직을 받아도 괜찮고, 조국의 딸은 아버지가 타다 물려받은 다 낡은 중고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포르세 탄다는 논란에 아반테 탄다고 변명하듯 대응해야 하는가? 강남에 소나타처럼 돌아다니는 벤츠 정도는 타고도 남을 재력에 딸도 직장생활 하는데 벤츠 타면 어때서 그걸 일일이 변명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학부 시절 강남 산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부도덕한 부라도 쌓은 집안처럼 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사회적 책무와 지식인의 소명에 대해 교육 받고 부채의식을 가졌지만,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흐른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는 이토록 이율배반적인 인식과 선택적 공정을 요구하는지 의아하다.

정무직 맡지 않고 적당하게 명망을 누리며 강남의 여느 좌파처럼 입바른 소리 하면서도 해외여행 다니며 세상의 환호를 즐기고 강의하며 살 수 있었던 그가 단지 공명심과 자리가 탐나 정무수석과 법무부장관을 맡았을까? 그를 욕하려거든 우선 책에 근거를 제시하며 상세하게 기술된 공직 수락 경위와 심경부터 읽은 다음에 비판해도 늦지 않다.

내가 대학교수나 예전처럼 큰 조직에 있다면 당장 학생이나 전 직원에게 책을 사서 나눠주고 토론하고 싶을 만큼, 이 책은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수많은 이슈와 논점, 생각거리를 담고 있다. 정치와 법, 교육과 부, 세계관과 공동체 의식에 대한 생생한 토론 교재로 제격이다.

Q 7. 윤석열은 답해야

지지여부를 떠나 부인과 함께 들뜬 표정으로 문재인 정부의 임명장을 받은 윤석열이 중도 사임하고 정치에 나서는 지금 상황 자체가 너무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책에 보면 “지금껏 민주당을 한 번도 찍은 적 없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영전시킨 대통령을 욕 보이고 있는 윤석열은 답해야 한다. 저자의 공개 질문에 대해. 기자들은 책의 감정적 표현만 인용하지 말고 윤석열에게 물어야 한다.

“아무리 논란이 많다 해도 우병우라는 사람을 구속하기 위한 수사를 할 수는 없고요.”라던*** 윤석열은 왜 조국에 대해서는 상반된 입장을 가졌는지 주권자 앞에 설명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에 변함없다”던 윤석열은 왜 입장이 바뀌었는지 기자들은 묻고 윤석열은 답해야 한다.

수사 기소 분리 방안에 “저는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던 윤석열은 왜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파괴”라고 상반된 주장을 하는지 해명해야 한다.

기자를 포함 우리 모두는 주권자로서 마땅히 물어야 한다. 책에 적힌 로마 시인 류베날리스의 한 마디를.

Q 8. 책은 취재거리의 보고, 기자들은 제대로 읽었나?

책은 검사(檢事)가 검사(劍士) 되는 과정에 관한 압축적이면서 흥미진진한 서사이기도 하다.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밀도 높은 묘사력으로 여러 쟁점을 제기한다.

저자가 취재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김오수, 윤대진, 곽상도 등 실명 주인공들에게 물어야 할 내용이 넘친다. 기자들은 왜 취재하지 않나? 법조기자에게 공유된 검사의 이름은 왜 밝히지 않나?

최강욱이 명확하게 지적했듯이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이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것은 군사독재를 벗어난 민주화 덕분이다.”(112쪽). 그래서 기자들이 질문할 아이템도 넘친다.

1972년 유신헌법에 김기춘이 집어넣은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이대로 두어야 하나? 간신히 시행된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나? <<조국의 시간>>으로 다시 촛불시민을 거론하면서 촛불시민이 동원됐다고 한 홍준표, 서초동 집회가 문 정권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준다던 박형준의 입장은 왜 묻지 않나? 고 김홍영 검사를 괴롭힌 김대현 부장은?

Q 9. 독후감 토론회라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책은 기자들의 취재거리만이 아니라 여러 공부거리와 숙제를 남겼다. 미란다원칙 등 제대로 알지 못했던 개념 등에 대해 절로 공부하고 생각할 계기를 준다.

민주사회에서 우리네 삶을 좌우하는 법의 타당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봤다. 일례로 조민 양의 생기부 유출 건의 경우 경찰은 유출자를 찾지 못하고 ‘참고인 중지’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도둑질한 사람이 따로 있어도 장물을 내다 판 사람은 처벌 받지 않나? 그렇다면 그 생기부로 떠든 사람과 보도한 언론의 책임은? 정경심 교수 기소 다음날 예측보도한 SBS의 책임은?

<<조국의 시간>>은 대선까지 남은 시간, 개인적 찬반 논란을 떠나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공정, 진보 보수에 대한 이율배반적 사유와 법과 언론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남겨 놓았다. 이 질문을 어떻게 묻고 답을 찾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는 달라질 것이다.

“자유는 법률의 보호를 받아 처음으로 성립한다. 이 세상에 법 외에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아우렐리우스 아구스티누스의 말처럼 무엇보다 나의 자유를 위해 질문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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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8대학의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가 2007년 쓴 책

**“History is written by the victors, but it's victims who write the memoirs.”

― Carol Tavris, Mistakes Were Made (But Not by Me): Why We Justify Foolish Beliefs, Bad Decisions, and Hurtful Acts

***2017년 10월 23일,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 중 당시 윤석열지검장 발언